모처럼 만에 휴가를 즐기고 있다. 휴가를 보내는 나를 보며 혹자는 네가 진정한 승자라고 말한다.
혼자서 취미를 즐기는 모습에 감탄했다고 한다. 차에 트레일러를 연결해 바다로 왔고 윈드써핑을 탔으며 지금은 커피를 마시며 난로에 몸을 녹이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혼자'라는 점이다. 내일은 바이크를 타고 해안 드라이브를 즐기려고 한다.
그것도 '혼자서'말이다.
갑자기 휴대폰에 상사의 이름이 화면에 뜬다. 이것, 저것, 계속 물어본다. '아, 복귀해야 하나?'고민이 된다.
문제가 생겼다. 사고를 친 후배를 감싸준 것이 화근이 된 것 같다.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후배인데 같은 잘못이 반복되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 시말서를 쓰고 있었고 몇몇은 이미 그의 잘못에 대해 알아버렸다. 나는 작성하고 있는 시말서를 빼앗아 내 가방에 넣어버렸다.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같이 죽자라고 하자, 후배는 연신 감사합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또 사고를 쳤고 그것을 묵인하고 감싸준 나까지 처벌을 받게 생겼다.
'사람을 믿은 내 잘못이지...사람이 싫다.'
휴가는 걱정 때문에 망치게 되었고 복귀 하자마자,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 말썽이다. 그는 앞서 말했던 '악질적 나르시스트'이다.
그가 다른 부서로 가자마자, 후배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가 했던 그동안의 악행과 비리를 신고했다.
"너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보스께서 너의 의견을 자꾸 물어보라고 하시네"
"예, 이번이 두번째이고 더이상은 안될 것 같습니다. 제가 그 친구 관리를 못한것에 대해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다면 지겠습니다. "
후배들은 나에게 피해가 갈까봐 말을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보스에게 나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이점 때문에 보스는 내가 이 상황을 모두 조종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내가 후배들에게 하지말라고 하면 문제를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내 의견을 물어보라고 했던 것이다. 보스의 입장에서는 문제가 커지는 것이 싫고 '악질적 나르시스트'가 인간성은 나빠도 부지런하고 일에 대한 욕심과 성취욕이 강해 보스도 그의 처분에 대해 고민했던 것 같다.
"그는 이미 강을 건너갔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사람이 싫다. 나도 사람인데 나도 싫어진다.
대인기피증 증상을 테스트 해봐야 할 것 같다. 나도 대인기피증일까?
1. 다른 사람의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다.
2. 다른 사람이 자신을 나쁘게 평가할 것이라 생각한다.
3. 사람들이 많은 장소를 가면 불안을 느낀다.
4.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갈까봐 본인의 의견을 잘 말하지 않는다.
5. 다른 사람들 눈을 보며 대화하는 것이 불편하다.
6. 친하지 않은 사람을 만나고 오면 많이 피곤하다.
7. 얼굴이 쉽게 붉어지고 자주 말을 더듬는다.
8. 새로운 장소나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피한다.
9. 가족 간의 대화가 별로 없고 서로 친하지 않다.
10. 남에게 주목을 받는 일을 아주 싫어한다.
11.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의 하지 않는다.
2번 항목, 다른 사람이 나를 나쁘게 평가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항목에 오기가 생겨, '뭐, 어쩌라고!'라는 생각이 들면서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다.
직면하기와 한계
직면을 하려고하면 내가 어려서 또는 살아오면서 사람에 대해 공포심을 갖게 된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 과정을 실제로 들여다보고 그것의 실체를 알게되면 별게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을 자꾸 들여다보며 직면을 할수록 그 상처를 자꾸 건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 할 수도있다.
암세포를 죽이다가 정상세포까지 죽게되는 것이다.
직면하는것 말고 다른 대안은 없을까?
사람말고 더 무서운 존재를 찾아라
성경에 나오는 사울과 다윗의 비교를 통해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었다.
두명 모두 사람들의 모욕, 치욕, 비난, 저주 가운데 한사람은 대인공포증에 빠지고 한사람은 안빠지게 된 것일까?(사울은 유력자로 자라, 결국 왕이 되지만 대인공포를 얻었고, 다윗은 양치기 출신으로 강한 골리앗의 협박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1:1 전투를 치르게 됨.)
다윗이 같은 상황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전투에 임하게 된 것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이라는 자신의 신을 더 두려워 했기 때문이다. 자기중심적이지도 않았고 세상의 그 어떤 두려움도 의식할 필요도 없었다.
사울은 훗날 왕이되어 다윗을 죽이려고 시도했을 때도 다윗은 사울을 무서워하지 않았고 하나님께만 매달렸다. 사울은 자기중심적인 나르시스트적인 사람이었다면 다윗은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공포심을 극복할 수 있었다.